디어 에반 핸슨
요즘 뮤지컬에 아주 많은 관심을 가지고 살고 있다. 극장에 보러 다니는 것도 좋고, 집에서 여가 시간을 보낼 때에도 유튜브로 뮤지컬 영상들을 찾아보고 노래도 넘버들을 찾아듣는 요즘이다.
그러면서 알게 된 '디어 에반 핸슨'. 뮤지컬로 유명하다고 하지만, 브로드웨이의 뮤지컬까지 알기엔 나는 너무나도 초보 뮤린이였다.
뮤지컬 넘버들을 찾아 듣다보니, 알고리즘이 데려다줘서 디어 에반 핸슨의 넘버도 자연스레 들었고, 넘버가 너무 좋아서 차에서 흘러나오는 곡을 듣다가 '이게 무슨 노래지?'하고 찾아보면 '디어 에반 핸슨 OST'여서 이 뮤지컬이 궁금했었다. 그런데 또 마침 이 뮤지컬이 영화로 만들어져서 국내 개봉을 한다하고, 또또 마침 내가 애정하는 박강현 배우가 홍보를 한다기에 더더욱 관심을 가지고 개봉을 기다렸다.
그렇게 정말 얼마만에 영화관에 갔는지 기억도 안나지만, 정말 오랜만에 그것도 개봉일에 맞춰서 영화관에 가서 '디어 에반 핸슨'을 봤다.
개봉 전날 몇몇 기대에 못미친다는 평을 보고 살짝 기대를 낮추고 편안한 마음으로 가긴 했지만, 무슨일인지 눈물,콧물 질질 다 흘리며 마스크 축축하게 적시며 영화를 보고왔다. 나는 워낙 너무 잘 잊어버리는 타입이어서 (종종 영화의 내용은 커녕 내가 봤는지 안봤는지도 다 까먹어버린다) 잊기 전에 조금이라도 남겨놓고 싶어서 끄적여본다.
라라랜드와 위대한 쇼맨 제작진이 만든 또 하나의 뮤지컬 영화
내용도 넘버도 다 알고 갔음에도 왜그렇게 에반에게 감정이입해서 줄줄 울면서 봤을까. 영화보고 나와서도 운전하며 집에 오는 길에도 그 감정이 좀처럼 정리가 안되어서 울면서 왔다. 음.. 아무리 생각해도 그정도는 아닌데 난 왜그랬을까.
영화 버전 OST가 나와있어서 봤는데,
기억에 남는 넘버들 위주로 남겨보려고 하는데, 기억에 남지 않는 넘버가 없다...ㅜㅜ
Waving through a window
영화 초반부 거의 첫곡 이었던걸로 기억한다. (실제 뮤지컬보다 넘버가 조금 삭제되었다고 들었다.) 이 곡은 많이 들어서 익숙한 곡이었다. 사실 넘버만 따로 들었을 때에는 스토리도 잘 몰랐고, 가사도 잘 들어오지 않았고, 리듬이 신나서 마냥 밝은 곡일거라고만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지 처음부터 코가 찡하더니 눈물 고임....(아.. 나이가 든건가.. 왜이러는거야 대체;;)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 어렵고 혼자 외로움 속에서 살아가는 에반이 세상에 나와서 사람들과 소통하며 살고 싶지만 그것이 어렵다고 노래한다. 창문 밖에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며 똑똑 창문을 두드리며 손을 흔들고 이야기하지만 아무도 그의 이야기를 듣지 않음에 외로워 하는 내용의 곡인데 리듬이 너무 경쾌해서 더 마음이 아팠다. 리듬감 있는 곡에서 '나 지금 외로워! 누군가 나 좀 봐줘 !!'외치는 에반이 너무 안쓰러웠다.
이 곡의 첫 가사에 '실수할까봐 겁이 나서 제대로 시작하기도 전에 주저하게 된다' 는 내용이 있다. 여기서 에반은 소히 '사회불안장애'라고 불리는 일종의 마음의 병을 가지고 있어서 약을 먹는 친구이지만, 그렇지 않다해도 점점 어떤 상황에 의해서 혹은 한살 한살 나이를 먹어가면서 주저함이 많아지는 것 같아서 첫소절부터 마음에 와닿았던 것 같다.
For forever
코너의 가족과의 첫 식사 자리에서 에반이 코너와 있었던 일을 상상하며 만들어낸 이야기이다.
겉으로는 코너의 부모님을 위로하기 위해, 코너가 좋은 친구였다고 꾸며서 없는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장면이지만, 그 지어내는 이야기가 너무나도 에반이 꿈꾸며 바라던 모습임이 보여서 너무 짠했다. 이 곡에서도 결국 에반은 외롭다고 외치고 있는 것 같아서 너무 마음 아팠다.
코너의 가족들은 에반의 이야기를 들으며, 코너에게 상처받았던 마음과의 괴리감으로 혼란스럽기도 하고, 에반이 지어낸 이야기이지만 코너의 밝았던 모습들로 조금의 위로(?)를 받기도 하는 것 같다.
이 넘버 가사도 곡도 참 아름답고 씬이 주는 느낌이 참 뭉클하면서 묘했다.
Requiem
레퀴엠은 말그대로 코너 가족이 부르는 코너에 대한 진혼곡이다. 코너에게 좋은 기억이 없는 동생 조이는 왜 거짓으로 슬퍼해야하는 거냐고 오늘밤은 진혼곡을 부르지 않겠다고 노래한다. 자신에겐 나쁜 오빠였는데, 그런 오빠의 죽음으로 혼란스러운 감정의 조이의 레퀴엠이 와닿았다.
때때로 주변 상황에 의해서 나의 감정이 정해져야할 때가 있는 것 같아서, 조이의 혼란스러운 마음이 이해되었다.
The anonymous ones
알라나가 코너프로젝트에 에반이 참여하길 바라며 '겉으로는 보이지 않아도, 많은 사람들이 외로움과 마음의 상처를 가지고 있다'라고 말하는 원작 뮤지컬에는 없지만 영화에서 추가된 곡이라고 한다. 밖에서는 웃으며 밝고 대외활동도 많이 하는 알라나도 혼자 있을 때는 약을 먹으며 마음의 어려움을 이겨내고 있는 친구였고,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겉으로 보이지 않는 자기만의 싸움과 어려움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꼭 약을 먹어야 아픈거는 아니니까.
참 이상하게도 나만 힘든게 아니라는 사실이 위로가 될 때가 있다. 타인의 아픔을 보며 내 아픔에 위로가 된다니 너무 찌질하고 구린 모습이기에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그렇다. 나는 찌질..해....
You will be found
디어에반핸슨 하면 가장 유명한 넘버가 아닐까 싶다. 나도 가장 먼저 접했던 곡이었고, 이 영화 홍보차 박강현배우가 한국어 버전으로 불러서 정말 많이 들었었다. 곡이 너무 따뜻해서 '영화 나오면 꼭 봐야지'하고 마음 먹었었던 넘버!
에반이 코너추모식에서 스피치를 하다가 떨려서 원고를 떨어트리고, 마음에서 나오는 진짜 말을 하며 부르는 넘버인데, 이 곡이 sns를 통해 퍼져나가면서 일이 커지는(?) 상황이 된다. 사실 이 과정이 '이렇게 퍼진다고?!' 싶은 면이 살짝 없지 않아 있긴 했지만..ㅋㅋ 이 넘버는 대놓고 위로하려고 만든 곡이어서 또 너무 좋은 곡이어서 역시나 너무 좋았다.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이 두려운 에반이 세상으로 나오는 계기가 되는 부분이어서 좋았고, 나도 주변을 잘 살피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시 한번 생각했다.
왜 그렇게 감정이입해서 울면서 봤는지 모르겠다.
요즘 느끼는 것이 몸의 병도 병이지만, 마음의 병이 참 무섭다는 생각을 한다. 코너도 에반도 외로움 속에 살았다. 코너는 그 외로움으로 죽었고, 에반은 아이러니하게 코너로 인해 외로움을 떨쳐내고 일어나는 법을 배운다.
너무 황당하게 벌어진 일로 에반은 착한(?) 거짓말을 하게되고, 일이 커지고 또 커지는 모습을 보며 어떤게 맞는 것인가 싶기도 했고, 그럼 진짜 코너는 없는거잖아 싶기도 했고, 알라나가 에반이 절대 혼자 보라고 한 편지를 SNS에 올리는 모습을 보며 원망스럽기도 했고, 에반이 코너의 가족에게 사실을 말할 때 왜 조금 더 적극적으로 변명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했고, 참 많은 감정이 스쳤던 영화였다.
아무래도 다시 한번 봐야겠다. 좀 더 디테일하게 보고 싶다.